– 목표 정하기: 국가와 대학, 그리고 Wishlist
포닥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한 번 더 굳히시길 권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포닥은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자리라는 무게감을 항상 인지한 채 출발해야 하고, 무엇보다 첫 컨택부터 최종 계약까지 가는 길이 정말 험난합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저와 함께 차근차근 준비해 봅시다.
컨택에도 여러 경로가 있다
주변을 보면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습니다. 저처럼 생판 모르는 교수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내는 대신, 다양한 경로로 미리 길을 닦아 둔 경우들입니다.
- 학회에서 교수님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포닥에 관심이 있다고 어필 – 인맥 구축
- 지도교수님의 인맥을 통해 지인 교수님 랩으로 가는 경우
- 박사과정 때부터 관심 랩의 논문을 읽고 질문 메일을 보내며 자신을 미리 알려 두는 경우
- 운 좋게 연구실 과제 협력을 계기로 포닥 자리로 이어지는 경우
가능하다면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는 이 중 어느 것도 아닌, 완전한 맨땅에 헤딩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조사하고, 정리하고,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첫 단계,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고 포닥 Wishlist를 만드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왜 Wishlist가 필수인가
지원을 시작해 보면 알게 됩니다. 어느 순간 매크로를 돌리듯 메일만 수십 통씩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100통 보내면 10통 답장 온다는 건 남 얘기지” 하며 뛰어들었고, 초반에는 실제로 답장이 잘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도 매크로가 되었습니다.
포닥 구직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그래서 Wishlist가 필수입니다. 나중에는 누구에게 메일을 보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엑셀로 만드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메일은 한 번만 보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리마인드 메일까지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보냈는지 진행 상황을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포닥 구직은 철저히 계획적으로, 이른바 ‘TJ스럽게’ 가야 하는 긴 여정입니다.
예시로 제가 만들어 두었던 excel 파일을 첨부해드립니다. 이거로 사용하셔도 좋아요.
1. 미국이냐, 유럽이냐
목적지를 정하는 것이 첫 단추입니다. 포닥 자리를 찾는다면 보통 미국 아니면 유럽을 놓고 고민하게 됩니다. 이미 정하셨거나 어디든 상관없다는 분은 다음 절로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이 선택은 결국 “포닥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라면
국내에서는 아직 미국파가 강세입니다. 포닥 경력에도 일종의 학연이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라, 국내 교수 임용이나 정출연을 목표로 한다면 미국이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유럽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에도 막스플랑크나 베를린 소재 대학에서 포닥을 마치고 국내 교수로 임용되신 분들이 있고, 유럽파도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귀국을 염두에 두신다면 미국 포닥의 메리트가 여전히 더 커 보입니다. (물론 대가 밑에서 배우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연구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맞습니다.)
국가 자체에 대한 선호가 있다면
정착을 목표로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순수하게 살아 보고 싶은 나라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국과 함께 스위스 쪽 대학에도 많이 지원했습니다. 스위스는 포닥 기간만이라도 꼭 한번 살아 보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EPFL, ETH 등 세계적인 기관이 있는 스위스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2. Wishlist 만들기 (가장 중요)
대상이 될 대학과 연구소를 정리해야 합니다. 미국에는 대학뿐 아니라 정부 연구소도 있고,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생각보다 키워드 검색으로 쉽게 찾아지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틈틈이 인터넷 서칭을 하며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고분자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찾되, 소재 연구만 하는 랩보다는 응용(Application)까지 함께 다루는 랩들을 포함해 조사했습니다.
리스트는 반드시 엑셀로 만들고, 컨택할 때마다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하세요. 귀찮더라도 이 작업을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메일마다 Cover letter와 CV를 첨부하는데, Cover letter의 교수님 성함을 매번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에 와서 교수님들과 이야기해 보면, PI 이름을 잘못 쓴 지원 메일이 정말 많이 온다고 합니다. 이름부터 틀린 메일이 면접까지 갈 가능성은 사실상 없겠지요. 항상 신중하게, 커피 한잔 마시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발송 버튼을 누르세요.

이 리스트 외에도 정말 많이 보냈습니다. 어림잡아 100통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3. 컨택의 전체 흐름
포닥 컨택은 대략 다음 순서로 진행됩니다. 각 단계의 자세한 내용은 이후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 메일 발송 — 답장이 없으면 이틀 정도 뒤에 리마인드 메일을 보냅니다.
- 답장 받기 — 보통 세 가지로 나뉩니다: 안 뽑는다 / 관심은 있다 / 면접 보자.
- 답장 없음 — 한 달 정도 주기를 두고 다시 리마인드를 시도합니다.
- 답장에 회신하기 — 안 뽑는다거나 기다려 달라는 메일에도 반드시 회신하세요. “귀 연구실에 관심이 많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함께 연구하고 싶다”는 답장을 남겨 두면, 나중에 재연락이 오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제 경우 Princeton과 Georgia Tech이 그렇게 다시 연락이 온 케이스였습니다.
- 면접 잡기 — 보통 미국 시간대에 맞춰 잡힙니다. 급한 교수님은 당장 내일이나 모레 보자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발표 자료는 항상 미리 준비해 두세요. 물론 주제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할 수 있는 자료여야 합니다.
- 결과 기다리기 — “언제까지 알려 주겠다” 혹은 “지원자가 많아 기다려 달라”는 답을 들으면 한동안 애타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저도 새벽마다 폰 알림에 수없이 깼습니다. 다만 지금 와서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기다려 달라”는 답은 즉시 뽑을 만큼의 인상은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해서 안 될 가능성이 높은 편입니다. 반대로 Georgia Tech의 경우 면접 당일에 교수님이 “지금 계약 서류 보낼 테니 계약하자, 다음 달에 올 수 있느냐”고 바로 말씀하셨는데, 이런 경우가 제일 시원시원합니다. 하필 Princeton의 결과 발표 시기와 겹쳐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쉬어가기 — 멘탈 관리에 대하여
메일을 50통쯤 보내다 보면 현타가 옵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재인가” 하는 생각에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기분마저 듭니다. 하지만 절대 절망하지 마세요. 그 교수의 메일함에는 매일 수십, 많게는 수백 통의 메일이 쌓입니다. 그리고 교수 입장에서도 고려할 것이 많으며, 솔직히 운도 크게 작용합니다.
- 자리가 있어야 뽑는다 — 펀딩과 공석이 있어야 채용이 가능합니다.
- 포닥 메일은 사실상 정크 메일 취급 — 하루에 어마어마한 양의 컨택 메일이 온다고 합니다. (제가 답장을 많이 받았던 비법은 다음 편에서 공개합니다. 별것 아니지만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 인터뷰까지도 긴 여정 — 여기서 지치면 안 됩니다.
- 인터뷰 후 오퍼 단계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 저도 겪었습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노를 저어야, 바람이 잠시 불어 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에이, 뭐 그리 어렵겠어” 하며 시작했던 저의 멘탈이 와르르 무너진 이야기도 천천히 풀어 보겠습니다. 제 엑셀에 면접 일정이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있는 이유가 바로 그만큼 길고 힘들었던 여정의 흔적입니다. 다들 마음 단단히 먹고 함께 준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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